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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몽-虛夢-

  “이릉노조가 살아있습니다.”

  난장강 대토벌로부터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4대 가문이 합심하여 사도에 빠진 인면수심 위무선을 처단함으로써 수진계에 안정을 되찾아 온 이 사건은 여태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대저 악인의 몰락이란 통쾌감을 주는 법이었다. 사람들은 권선징악의 본보기라면서 여전히 위무선의 죽음을 들먹이고 비웃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혹여 이릉노조가 돌아올까 두려움에 떨었다.

  위무선의 힘에 대한 소문은 해가 갈수록 사나워져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손짓 하나로 수천의 목숨을 앗아가는 건 기본이며, 태산을 무너뜨리고 땅을 흔드는 정도는 손바닥 뒤집듯 쉬이 해내는, 가히 재앙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한데, 그런 위무선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복수를 위해 다시 나타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사람들의 불안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모두가 꺼리던 말이 기어이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위무선이 죽지 않았단 말입니다.”

  하급 수사 한 명이 목소리를 낮추고 한껏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심각한 그와 달리 나머지 수사들은 여상스럽게 차를 마시며 코웃음을 쳤다.

  “그런 농담은 이제 한물갔습니다. 2년 전쯤이었으면 믿어드렸을 텐데요.”

  “맞아요, 요즘은 그가 탈사하여 돌아왔다고 하는 편이 더 그럴싸합니다.”

  자신의 말을 대수롭지 아니하게 여기자 건몸이 단 수사는 눈앞에 놓인 잔을 순식간에 비우고 얼굴을 쓸었다. 공연히 가슴이 조여들고 숨이 거칠어졌다. 답답함과 공포심이 그의 속을 마구 휘저어댄 탓이었다. 혈세불야천을 직접 목도했던지라 위무선을 떠올릴라치면 어쩔 수 없이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이 결코 낭설을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만을 입에 담고 있음을 피력했다.

  “농담이 아닙니다! 어젯밤, 저 골목 어귀에 서 있다가 산으로 사라지는 것을 똑똑히 봤습니다. 그건 분명 위무선이었어요. 그가 살아서 이곳을 배회하고 있다고요!”

  “이보시오, 공자. 위무선은 죽었습니다. 그리 두려워하시더니 허상이라도 본 모양입니다. 용색이 많이 초췌하신데, 오늘은 그만 돌아가서 쉬는 게 좋겠습니다.”

  다른 수사들이 이상스럽다는 눈빛을 보내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꽉 쥐었다. 쉽사리 믿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진심으로 말해도 이런 취급이니 그는 못내 억울했다.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떠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어느 쪽으로 갔지.”

  느닷없이 던져진 말에 모두가 똑같이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인영에 대경실색하여 벌떡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 함광군……!”

  “어찌 여기에…….”

  변방의 작고 별 볼 일 없는 마을에서 남망기를 볼 줄은 몰랐던 수사들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엉거주춤 섰다. 몇 년의 폐관 수련을 끝내고 돌아온 그는 여전히 고아하고 음전하여 감히 다가설 수 없는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수사들이 자신의 질문에 답하지 않자 남망기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그가 어느 쪽으로 사라졌냐고 물었다.”

  “아, 위, 위무선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여기 바로 뒤편에서 모습을 감췄습니다. 저, 확실한 건 아니나…….”

  위무선을 본 수사가 나서서 어름어름 답했다. 정작 남망기가 추궁하듯 매섭게 물어오자 자신이 없어졌는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였다. 남망기는 그의 손끝이 향한 쪽을 보더니 다시 눈을 돌려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

  “이 일은 함구해라.”

  그들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위무선을 봤던 수사는 그 뒷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 안 되면 운몽에 말을 전할 생각이었는데, 함광군이 향했으니 안심이었다. 그것이 위무선이든 아니든 함광군이라면 확실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산을 오르는 발걸음은 다소 조급했고, 동시에 조심스러웠다. 혹시나 위무선이 기척을 눈치채고서 멀리 사라져버릴까 봐. 사실 그 하급 수사의 말에 신빙성이 있느냐 없느냐로 따진다면, 당연히 터럭만큼도 없었다. 그건 그럴싸한 증거 하나 없는 허황한 발언에 불과했다. 그러나 위무선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 희박한 가능성에 어찌할 도리 없이 온 마음을 쏟게 되는 자가 바로 남망기였다. 번번이 허방을 치면서도, 이번에는 정말 그의 흔적일지도 모른다는 미련에 휩싸여 남망기는 매번 소문을 쫓을 수밖에 없었다. 천하의 함광군을 이토록 어리석게 만드는 감정의 이름은 연정이었다.

  가파르고 험한 산세 탓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은 제대로 된 길도 없었다. 하지만 남망기는 풀숲을 헤치고 나뭇가지를 치우며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산을 둘러보았다. 그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인기척을 느끼기 위해 힘썼으나, 산은 작은 짐승이 바스락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참 동안 산을 누비던 남망기는 뉘엿뉘엿 땅거미가 지자 결국 걸음을 멈췄다.

  그는 이미 죽었는데, 나는 무엇을 바랐는가.

  이리될 거란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었으면서, 한편으로는 헛된 기대를 품고 있었던 건지 남망기는 몸을 휘감는 허탈감에 탄식했다. 그는 가만히 서서 막힘 없이 흘러가는 계곡물을 지켜보았다. 남망기의 처지는 이처럼 될 수 없었다. 마음에 품은 사람이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전할 길 없는 감정을 안고 떠돌다가 지금처럼 늘 막다른 벽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남망기는 언제나 그랬듯 또다시 위무선의 형적을 찾아 나설 것이었다. 그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뜨고는 발을 뗐다.

  그 순간, 돌아선 남망기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 틈으로 보이는 부러진 가지들이었다. 짐승이 한 짓이라기에는 그 솜씨가 정교했고 인위적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길을 내려고 한 것처럼. 남망기는 피진으로 그 틈을 조금씩 넓혀가며 거멓게 엉킨 잡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울창한 나무 뒤에 이런 곳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숨겨진 공간은 심히 아름다웠다. 너른 바닥을 뒤덮은 보드라운 풀은 해 질 녘의 빛에 물들어 온통 황갈색으로 흔들렸고, 그 사이사이로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어 감히 절경이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남망기의 시선을 끈 것은 다름 아닌 엉성한 오두막이었다. 그건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증거였다. 남망기는 귓가를 쿵쿵 때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한 발씩 오두막 쪽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그의 눈에 누군가가 담겼다.

  “……위영.”

  이름의 주인이 커다란 나무 아래 등을 기대고 잠들어 있었다. 은은하게 부는 바람에 머리칼이 날려 그의 얼굴이 조금씩 드러났다. 남망기의 눈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가지런히 감긴 눈과 오뚝한 코, 붉은 기가 도는 입술까지, 정말 그토록 그리던 사람의 모습이었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가슴을 보던 남망기는 조심스럽게 위무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행여나 그가 사라져버릴까 더 가까이 가지 못하고 갈급하게 바라만 보는데, 고요 속에서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벅차오르는 감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남망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위영이 살아있다.

  그의 숨결은 버석한 존재 의지를 적시는 구원이었다.

  그렇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가만 보니 위무선의 안색은 파리했고, 느슨하게 묶인 옷 사이로 살이 내린 탓에 도드라진 빗장뼈가 보였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시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생기가 없었다. 내뿜는 기운도 미약해서 눈앞에 있는데도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남망기는 저도 모르게 감긴 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별안간 손끝에 간지럽게 닿은 속눈썹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파르르 떨리더니, 안쪽에 자리 잡은 검은 빛이 눈꺼풀 사이로 드러났다. 머지않아 위무선의 공허한 눈동자에 남망기의 형상이 들어앉았다.

  남망기는 흠칫하여 손을 급히 거둬들였다. 위무선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불안했지만, 만약 그가 분노하더라도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상대를 똑바로 응시하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위무선은 찬찬히 눈을 접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것만 하여도 남망기의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기에 충분했는데, 위무선은 가만히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위영!”

  그리고 남망기의 품 안으로 쓰러졌다.

 

  살아남은 위무선은 고독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지도 모른 채 공허 속에서 죽 숨만 쉬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지 못해서. 어떻게 죽음의 엄습을 피할 수 있었는지는 몰랐다. 사지가 갈기갈기 찢겼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모든 게 끝난 공간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시체의 틈을 비집고 나오느라 피와 살점으로 얼룩진 손을 보며 위무선은 자조했다. 죽음마저도 나를 거부하는구나. 저승에도 내 자리가 없거늘 이승이라고 어련할까. 갈 곳 없는 위무선은 능선을 따라 무작정 걸었고, 사람을 피해 더 깊고 더 으슥한 곳으로 숨었다. 이제 다 지긋지긋했다.

  지벅거리며 험난한 산길을 걷던 위무선은 우연한 기회로 머물 땅을 발견했다. 거대한 나무로 둘러싸여 누구도 쉬이 찾을 수 없는, 그가 고립되어야 할 장소였다. 그는 이릉에서의 기억을 떠올려 겨우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오두막을 짓고 한동안 죽은 듯이 잠만 잤다. 무력감에 축축 늘어지는 몸을 이기지 못한 탓이었다. 그는 삭정이처럼 생기를 잃은 채 말라갔지만, 그런데도 죽지 못해 눈을 떠야 했다.

  오랜 잠에서 깬 위무선은 묵묵히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연신 힘이 빠지고 몸이 고통을 호소해도 그는 쉼 없이 움직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려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원치 않은 생이더라도 얻고 나니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발버둥 치는 제 꼴이 추하고 경멸스럽기까지 했지만, 위무선은 이를 악물고 다시 일에 몰두했다. 유일하게 남은 이 볼품없는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

  그렇게 위무선은 수년을 버텼다. 악몽과 고통은 여전했으나, 이젠 익숙해져 덤덤히 눈물을 닦고 일어날 정도가 됐다. 그러나 외로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갔다. 본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위무선이기에 고립된 처지가 괴로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간헐적으로 들이닥치는 고독감을 버티지 못하고 번번이 산 아래로 도망쳐 사람들 틈에 숨었다. 모습을 들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계속 사람이 있는 곳을 맴돌았다. 더 이상 사람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그리는 배반적인 행태였다.

  그래서인지 남망기의 얼굴이 보였을 때, 그가 처해있는 상황이나 복잡한 관계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위무선은 그게 당연히 꿈이라고 생각했다. 남망기가 정말 제 앞에 나타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안일한 마음으로 그는 힘없이 몸을 늘어뜨렸다.

 

 

  핑 도는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누군가가 위무선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더니 꿈에서 보았던 남망기가 거기 있었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망연히 그를 쳐다보자 남망기가 담담히 말했다.

  “좀 더 자. 아직 열이 있어.”

  그러더니 흐트러진 물수건을 바로 해주고는 낡아빠져서 이불보다는 거적때기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적절한 천을 목까지 덮어주었다. 위무선은 이 상황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해 얼떨떨한 채로 속절없이 남망기의 손길에 휘둘렸다.

  그렇지만 정신이 차차 돌아오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살갗을 스치는 체온과 촉감으로 미루어 볼 때, 이는 분명 꿈이 아니었다. 남망기가 자신을 찾아내고 만 것이다. 낭패라는 듯 얼굴을 찌푸린 위무선과 달리, 남망기는 차분하게 앉아 찬물에 수건을 적셨다.

  혼자 지내는 동안 만일 면식이 있는 자와 마주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끝에는 어김없이 죽음이 있었다. 칼에 찔려 죽고, 맞아 죽고, 고통받다 서서히 죽고…….

  그리고 그게 남망기라면 당장에 저를 고소로 끌고 가 죄과를 낱낱이 밝힐 거라고 생각했지, 이리 극진히 자신을 간병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무슨 의도가 있기에 돌보기를 자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행동이 의심쩍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상을 팍 쓴 위무선은 남망기의 손을 쳐내고 벌떡 일어나 몸을 뒤로 물렸다.

  “너, 여긴 어떻게 알았어. 이건 또 뭐 하자는 건데?”

  위무선이 흘러내린 물수건을 내팽개치고 언성을 높였다. 남망기도 덩달아 일어나서는 열 때문에 휘청거리는 그를 황급히 부축하며 차분히 달랬다.

  “위영, 진정해.”

  “죽이러 온 거면 이런 같잖은 짓 말고 얼른 끝내. 그편이 너도 좋잖아. 아니면 나한테 동정심이라도 느끼는 거야? 내가 이 꼴로 아등바등 사는 게 불쌍하기라도 해?”

  그 말은 남망기를 황망하게 했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위무선을 다시 죽음과 엮어 놓으라니, 자신이 무슨 수로 그러겠는가. 그의 생을 오롯이 함께하고 싶은 자가 바로 남망기였다. 과거에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어서 입 밖으로 꺼내야 했다.

  그러나 무릇 말이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고 어설퍼지기 마련이다. 말로써 남의 환심을 사는 법이 없고, 어떤 일에 가타부타 말을 얹는 일도 없는 데다가 긴한 상황이 아니라면 애써 입을 열지 않는 그에게 위무선의 경계심을 허물어뜨리는 작업이란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저 어렵사리 몇 마디 말만 건넬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 네가 살길 원해서…….”

  “아, 그래? 그런 걱정을 해 줄 만큼 우리가 가까운 사이인 줄은 몰랐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남잠. 그깟 말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내가 멍청해 보여?”

  위무선이 짓씹듯 발음하며 재차 저를 부축해 오는 남망기의 손을 떼어냈다. 그의 말을 들은 남망기는 겉보기에는 차분해 보였지만,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여실히 서려 있었다. 확실히 그들은 누군가 무슨 사이냐고 물어온다면 빈말로도 친우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격조한 사이였다. 게다가 한쪽은 거리감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쪽은 친구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으니 어찌 관계가 성사될 수 있겠는가.

  위무선은 제 말에 얼굴을 굳히는 남망기를 사납게 바라보더니 곧 비틀거리며 이마를 짚었다. 그의 육신은 강렬한 감정을 담기엔 과히 야위어있었다. 난데없이 시야가 점멸하는 빛처럼 아찔하게 번뜩였다. 삽시간에 그의 육신이 허물어졌다.

 

 

  남망기는 참으로 고집이 센 자였다. 아무리 꺼지라고 화를 내고, 그 화를 못 이겨 또 쓰러지는 꼴을 보고서도 끝까지 산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하지만 전과 달리 더는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른 아침이면 마을에 내려가 먹을거리를 사다 두고, 나머지 시간은 등을 돌린 채 멀찌감치 서 있었다.

  초반에는 그게 마치 자신을 감시하는 것만 같아 숨이 막혔다. 그래서 위무선은 남망기가 두고 간 것들을 죄 산짐승의 먹이로 던져버렸다. 그러나 남망기는 낙담하지 않고 한결같이 음식을 가져다 무너져가는 오두막 앞에 두고 갔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지는 행동은 불신을 없애기에 충분했다. 여느 때처럼 문 앞에 놓여 있는 음식을 본 위무선은 그것이 이제 불쾌하게만은 느껴지지 않자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그는 음식을 들고 목석같이 앉아 있는 남망기에게 다가갔다.

  “너는 정말 못 당해내겠다. 적당히 포기하고 돌아갈 만도 한데 어찌 사람이 이리 끈질겨.”

  “…….”

  “앞으로는 많이 좀 사 와. 둘이 먹기엔 양이 너무 부족하잖아. 이걸 누구 코에 붙여.”

  “네 몫이야.”

  “됐어. 너 밭일시키려고 나눠주는 거니까 잠자코 먹어. 오늘 잡초 뽑아야 하거든.”

  “응.”

  남망기는 위무선이 어떤 말을 하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은 가히 순종적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었다. 적당히 따스한 햇볕, 부드럽게 풀 위를 달리는 바람과 저만을 오롯이 바라보는 남망기. 무슨 까닭인지 이 모든 것이 유쾌하게 다가와서 위무선은 오랜만에 티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그들의 관계에 어느 정도 진척이 있고 난 뒤로 일상은 무척이나 평화롭게 흘러갔다. 위무선은 자신의 오두막 한편을 남망기에게 내어줬고, 그와 함께 지내면서 악몽도 점차 꾸지 않게 되었다. 돌봐주는 이가 있어서 그런지 주기적으로 열을 내던 몸도 조금은 건강해진 듯했다. 차차 시간이 흘러 익숙지 않은 밭일에 당황했던 남망기는 능숙히 잡초를 골라낼 수 있게 되었고, 위무선은 은연중 남망기를 의지하게 되었다.

  그들이 지내는 곳은 산세가 험하고 외진 곳에 있어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했다. 외부의 위협이라 함은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주시나 흉시도 그중 하나였다. 남망기는 설사 그것들이 나타난다 해도 위무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위무선은 이릉노조였으니까. 이곳은 안전한 장소임이 분명하다고, 그리 여겼었다.

  “남잠, 나 꿩 좀 잡아 올게. 방금 이 근처에서 봤는데 통통한 게 맛있어 보이더라고.”

  “같이 가.”

  “어휴, 남가 둘째 공자. 너는 가서 네 일 하고, 나는 내 일 해야 효율적이지. 자꾸 나만 따라다니려고 하면 곤란해. 금방 다녀올 테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남망기는 머리를 쳐드는 불안을 애써 부정하며 손을 흔드는 위무선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았다. 산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고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남망기는 더 버티지 못하고 하던 것을 내팽개친 채 그를 찾아 나섰다. 얼마 가지 않아 발견한 것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주변을 배회하는 흉시였다. 이 산에서는 처음 보는 거라 의아했지만, 남망기는 무심히 그것을 처리한 다음 사방을 휘 둘러보았다. 분명 멀리 가지 않았을 터인데 위무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초조함에 조금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자 이내 목을 긁는 그르렁 소리와 함께 흉시 여럿이 무언가를 찾듯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늘어난 흉시를 보며 미간을 좁힌 남망기가 고금을 뜯으려던 그때,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그것들이 괴성을 지르며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 행동이 이상해서 뒤를 따르니 익숙한 형체가 쓰러져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바로 상처를 입은 위무선이었다.

  남망기는 다급히 흉시의 무리를 앞질러 간 후, 찰나에 손을 움직여 단번에 그것들을 멎게 했다. 그리고 지체 없이 위무선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를 품에 안았다. 그는 피가 전부 빠져나간 사람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공포 혹은 분노. 어쩌면 체념과도 같은 감정에 그는 손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세게 남망기의 옷자락을 그러쥐었다. 불덩이 같은 몸을 거세게 끌어안은 망기는 말없이 이를 사리물고 피진에 올라탔다.

 

 

  자리에 누워 물수건을 이마에 얹은 위무선은 남망기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한쪽 팔로 눈을 가려버렸다. 남망기는 그를 책망할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가슴이 철렁했던 아까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원기를 다루는 그가 어찌하여 흉시의 공격을 받은 것일까. 한참을 머뭇거리다 나지막이 던진 질문에 위무선은 움찔했다. 그는 입술을 달싹이더니 눈을 가렸던 팔을 내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그냥, 몸이 안 좋아져서. 갑자기 이러는 거 종종 있었던 일이잖아. 네 말대로 너랑 같이 갈 걸 그랬나 봐.”

  “…….”

  “못 믿겠다는 표정이네.”

  “아니, 믿어.”

  “내가 생각해도 거짓말 같으니까 그리 애쓰지 않아도 돼.”

  위무선은 몸을 남망기 쪽으로 돌려 누우며 털털한 웃음을 흘렸다. 남망기는 아무래도 추궁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따져 묻지도 않고 무작정 믿는다니. 무엇이 그리 자신을 맹신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위무선에게는 남망기에 대한 불신으로 숨겼지만, 나중에는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꺼내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흉시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해 비참하게 웅크려있었던 건 기실 몸 상태 때문만은 아니었다.

  위무선은 텅 비어있었다.

  그야말로 무엇 하나 가진 게 없었다. 목숨값으로 전부 잃고 만 것이다. 인간관계 같은 것은 물론이고, 금단이 없음에도 그걸 끝까지 비밀로 할 수 있었던 이유이자 그가 이릉노조라 불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완전히 사라졌다. 원기를 다루지 못하는 이릉노조라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 문장인지.

  위무선은 자신에게 닥친 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열기에 달아오른 눈을 문질렀다. 남망기가 저지하는 바람에 곧 그만둬야 했지만, 아무튼 결심이 서자 무슨 말이든 나오긴 나왔다. 그는 잠긴 목소리를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이제 빈껍데기야. 네 말대로 사도를 수련하고 방만하게 군 대가를 치른 거지.”

  “…….”

 

  살아남아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온몸이 쑥 꺼지는 듯한 절망감이었다. 힘을 잃었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그렇다 해도 때때로 속이 쓰려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위무선은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러나 남망기가 보내오는 다정한 눈빛에 울컥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자조하며 말했다.

  “여기 남은 건 내 목숨뿐이야. 네가 뭘 바라 여기 있는지 몰라도 난…….”

  “아니야.”

  “뭐?”

  “바라는 건 없어.”

  엄밀히 말하면 없는 건 아니었다. 위무선이 끝까지 살아가는 것. 굳이 꼽자면 그거 하나였다. 남망기에게 있어 생동하는 위무선은 삶의 원동력이었고, 인생의 전부였다. 그의 목숨만큼 세상에 중요한 것은 없었다. 바라는 게 없다는 남망기의 말에 위무선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럼 왜 아직도 머무는 건데? 설마하니 천하의 함광군이 운심부지처에서 쫓겨난 건 아닐 테고.”

  위무선은 손으로 남망기의 다리를 툭 치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남망기는 웃는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더니 열이 올라 뜨끈해진 상대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당황한 위무선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지자 그는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지금 여기서 속에 담아둔 말을 꺼내야만 했다. 남망기는 잔잔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위무선을 똑바로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뗐다.

  “네 곁에 있고 싶어서.”

  무덤덤한 목소리가 만들어낸 문장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 달콤하게 꾸민 말보다 감미로웠다. 눈치 없는 위무선이 단번에 남망기의 마음을 알아챌 정도로 노골적이기도 했다. 그 한 마디에 위무선의 얼굴엔 열이 홧홧하게 올랐고 가슴속이 저릿해졌다. 그건 무척이나 생소한 감각이라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으나, 남망기의 말이 싫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위무선은 상기된 얼굴을 한 채 물었다.

  “그 말, 꼭 나한테 고백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

  답은 없었지만 올곧은 시선은 명백한 긍정의 표시였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위무선은 누워있던 몸을 세워 남망기를 마주 보았다.

  그는 원칙주의자였다. 아정집이라는 틀을 옳은 기준이라 여겼고, 그 때문에 거기서 완벽히 벗어난 위무선을 소년 시절부터 탐탁지 않아 했다. 그랬던 남망기가 자신에게 고백이라니. 아마 남망기에게 있어 일생일대의 탈선일 거라고 위무선은 생각했다. 아픈 와중에도 어쩐지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가 그토록 자신에게 지극정성이었던 이유를 알게 되어 한편으로는 시원스럽기도 했다. 위무선은 긴장으로 굳어있는 남망기의 옷깃을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기더니 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거참, 나쁘지 않네.”

  남망기에게 있어 그 미소는 일거에 어둠을 몰아내는 빛과 같았다. 갈망하던 것을 얻은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고 숫제 멍하니 상대를 바라보았다. 늘 그렸던 위무선의 미소에 절로 손이 뻗어져 나갔다. 그는 자신이 연모하는 이를 와락 품에 안았다. 위무선의 머리칼이 천천히 허공에서 흩날리다 등을 감싼 남망기의 손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폭삭 너른 품에 안긴 위무선은 놀란 듯 잠시 머뭇댔지만, 이내 자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기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남망기는 제게 기대오는 온기를 느끼며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위영, 나와 고소로 돌아가자.”

  “…….”

  “내가 널 숨기게 해줘.”

 위무선은 남망기의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다. 떨리기라도 하는지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 박동을 듣고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아니, 사실은 이기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이 선택으로 훗날 고통에 신음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염없이 솟아나는 애정을 외면한다면 평생을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꽉 잡은 손의 체온이, 마주 닿은 입술이 너무나 다정해서 콧등이 시큰해졌다. 겹쳐진 입술을 뗀 위무선은 남망기의 목을 와락 끌어안고 말했다.

  “그래. 우리 같이 가자.”

  승낙의 말에 남망기는 안심했다. 고소로 돌아가면 위무선은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건강을 되찾아 자신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간은 그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듯했다.

 

 

  “남잠…….”

  끈이 툭 끊어지듯 위무선의 삶은 삽시에 끝이 났다. 마지막을 직감했는지 절박하게 이름을 부르며 안긴 몸은 입속의 말을 더 꺼내지 못하고 손쓸 새도 없이 생기를 잃었다. 남망기의 숨결이 점차로 거칠어졌다. 눈앞이 흐릿해져 연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끝은 위무선이 쓰러지는 횟수가 빈번해질 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바랐던 모든 건 이루어질 수 없는 허상에 불과했다. 멀리 도망쳤다고 생각했으나, 정해진 결말은 헛된 꿈을 꾸는 남망기를 조롱하듯 숨을 죽였다가 방심한 틈을 타 몰아닥쳤다.

  간절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답하지도 못했거늘, 운명은 매섭게 남망기에게서 위무선을 앗아갔다. 그는 불시에 닥친 종말에 굴할 수 없다는 듯 연신 위영을 불렀지만, 아무리 끌어안고 또 끌어안아도 생명의 빛은 손 틈새로 빠져나갔다. 남망기의 모든 것이었던 자는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아스라이 멀어져갔다.

  실로 허무하구나. 그는 차갑게 식어가는 몸뚱이를 끌어안고 아득한 상실감 속으로 침전했다.

 

  함광군의 품에는 이릉노조의 시체가 안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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