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사이시 조- 첫사랑


보우
@bows_MD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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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후 몇 달이 흘렀을 때였다. 사일지정으로 인해 누군가는 집을 잃었고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다. 그러나 시장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격을 흥정하고 있는 것이 꼭 전쟁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그들의 집에 외팔이 남편이 있고 애꾸눈이 되어버린 자식이 있으며 아내의 빈자리를 메우고자 시장에 나와 물건을 팔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남편이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든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누구든 각자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남망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망기는 약관도 채 지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위무선과 함께 도륙 현무의 목을 베었다. 사람을 먹는 짐승과 한 동굴에 갇힌 소년들이 세 시진 가량 목숨을 걸고 싸워낸 끝에 얻게 된 생존이었다. 살기 위해 싸웠다 한들 목숨 하나를 앗아간 전투가 어찌 격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전투로 인해 유일한 출구는 막혀버렸고, 위무선은 그길로 열에 취해 앓기 시작했다.
남망기는 위무선을 내치지 않았다. 내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그토록 위무선을 밀어냈고 그토록 위무선에게 화를 냈건만, 아무도 없는 동굴에 위무선조차 열에 취해 온전히 자신 혼자 남아있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남망기가 선택한 것은 뜨거운 머리를 조심스레 자신의 무릎에 올려두고 제 손이 계속해서 차갑기만을 바라며 가만히 그 이마를 쓸어주는 것이었다. 열에 취한 위무선은 때로는 몸부림쳤고 때로는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래도 남망기는 위무선의 곁을 지켰다. 상처 입은 몸을 움직이면 고통스러울까 봐 위무선의 몸을 붙잡아 주었고, 혹여 불편한 느낌에 잠에서 깨어날까 걱정하며 열에 들뜬 위무선의 헛소리에 일일이 답해주었다.
열에 취한 위무선을 운몽의 수사들에게 맡기며 남망기는 남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을 뿐이었다. 열에 취한 위무선에게 우연치 않게 흘려보낸 곡조가, 제 혼자 두루뭉술하게 생각하였을 뿐이라 남에게 내놓기도 민망했던 그 곡조가, 분위기에 취했는지 자신도 피곤함에 지쳐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모를 이유로 흘려보냈던 그 곡조가 너무나도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완성은커녕 무엇 하나 결정된 것이 없는 곡조였다. 가사도 음정도 무엇도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남망기가 무언가를 함께 흘려보냈을 때, 위무선이 그것의 이름을 물었을 때, 그것의 형태는 명확해졌다.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곡조보다도 엉성하고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 손길만큼이나 미숙한 것을 흘려보내며 남망기는 그것의 형태를 붙잡았다. 고작 ‘좋다’는 말 한마디에 남망기는 그것을 정해버리고야 말았다. 그것은 정말 민망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 타인의 앞에 선 남망기는 차마 그것을 위무선에게 그것을 전해달라 부탁하지 못했다.
남망기는 그날 ‘다음’을 기약했다. 위무선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남망기는 그날 고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후회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위무선은 무사했고 남망기도 무사했다. 살아만 있다면 어찌 만날 일이 없으랴. 얼마 지나지 않아 위무선은 행방불명되었으나 그것이 거짓이었던 양 살아 돌아왔고, 뛰어든 전장이 얼마나 참혹하던 결국 살아남아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그 사이 여러 번 위무선과 마주한 남망기는 몇 번이고 대화를 나누었으나 끝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지 못한 채 위무선과 껄끄럽게 갈라서야만 했다.
‘다음’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위무선은 강했고 자신도 강했다. 전쟁은 끝났고 소란스러웠던 세상은 제자리를 되찾아갔다. 위무선에 대한 여론이 거칠다 한들 그것은 시야가 좁은 이들의 궤변에 불과하였다.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고 진심은 보답받기 마련이 아니던가. 남망기의 믿음에는 한 점 의심도 없었다. 그렇기에 남망기는 단 한 번도 엇갈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남망기의 삶에 있어 사건도 사람도 전부 주어진 대로 흘러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정해진 길로, 정해진 말로로. 그러니 위무선과의 엇갈림 역시 필연에 지나지 않는다 믿었다.
그 후로도 남망기는 몇 번의 ‘다음’을 보냈다. 위무선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위무선에게 큰 실수를 해서, 위무선의 기분이 좋지 않았으니까. 상황이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을 뿐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다음, 또 다음. 이유도 다양했고 상황도 다양했다. 무수한 마주침 속에 남망기는 어쩔 수 없는 엇갈림을 거머쥐고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위무선의 거처가 달라지고 위무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달라져도 남망기는 결국 다음을 기약하고야 말았다. 위무선과 마주하여 위무선의 모든 소망을 해소해줄 ‘다음’을 말이다.
‘다음’은 없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한 번 있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겨우 목숨을 부지할 뿐인, 영력 한 조각 없이 힘겨운 숨을 몰아쉬던 사람을 붙잡고 있던 때에 남망기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도를 수련하였으니 영력이 손상됨은 필연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심각하리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영력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타고난 그릇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죽어가는 숨결은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남망기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것이 완전히 삶을 내려놓지 않도록 간절히 붙잡고 있는 것뿐이었다.
죽음에 형태가 있다면 이러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전쟁 중에는 죽어가는 것을 챙길 정도의 여유가 없었고, 남망기의 곁에 있는 것은 남망기에게 마지막을 허락하지 않았다. 남망기에게 있어 죽음의 형태란 죽었노라 전해 들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혹은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는 단순한 논리 속에서 고깃덩이가 되어 밟히는 것뿐이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알지 못했다. 그것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과, 끊어질 듯 미약한 것이 점점 꺼져가는 것을 직접 지켜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남망기는 처음으로 실감했다.
다음은 없을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남망기는 자신의 모든 것을 전달했다. 진심을 담아, 다시는 그러지 못할 것처럼, 마치 이게 마지막인 것처럼. 자신의 영력을 머금고 흐린 시야를 가진 것이 입술을 달싹일 수 있게 되었을 때도 남망기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이것이 마지막이 되어도 좋았다. 남망기는 그저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을 기약하기에 너무나도 약한 그 몸이 부디 다음을 기약할 수 있어지기를,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이 전해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러니 무엇이 돌아와도 괜찮았다. 돌아오는 것이 자신을 거부하는 단말마에 불과할지언정, 남망기에게 있어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듣고 있다는 신호였다. 비록 상대방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한들 남망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전달되었다면 남망기는 괜찮았다. 그것을 받아달라 요청한 것이 아닌, 그저 전달되어달라 바랐던 것뿐이었으니까. 그러니 남망기는 괜찮았다.
차가운 몸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남망기는 그제야 안심했다. 비록 그곳에는 뛰어난 의사도, 위무선과 오래 알아 온 친우도 없었지만, 남망기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위무선의 상태가 걱정되어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소중한 가족을 데려온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감사의 인사조차 전하지 못할 정도로 겁내는 사람들이었지만 남망기는 안심했다. 남망기가 자리를 떠나자 그들이 위무선의 상태를 살피러 모여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남망기는 두려워해도 피투성이가 된 위무선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남망기는 그런 사람들에게 위무선을 돌려주었다.
남망기는 위무선에게 한 마디도 남겨두지 못한 채 그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남망기는 겁먹은 표정으로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부탁할 정도로 매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위무선이 살아남았으니 괜찮았다. 위무선을 위해 하늘 같던 선배들에게 칼을 겨누고, 자신을 돌보며 가르쳐준 어버이와도 같은 숙부님께 무례를 범했지만 괜찮았다. 위무선은 살아남았다. 남망기는 위무선을 선택했고, 남망기의 선택은 위무선을 살려내 그를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그를 에워싼 그의 가족들을 등진 채 자신이 상처입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만 했지만 남망기는 두렵지 않았다. 남망기는 결코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은 남망기는 또다시 ‘다음’을 기약하고야 말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을.
남망기는 후회하지 않았으나 남망기가 저지른 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위무선을 두고 돌아온 남망기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벌을 청한 후 규훈석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었다. 돕겠다는 가족을 뿌리치고 어버이와 같은 분에게 저항했는데 어찌 죄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비명과도 같은 남계인의 호통을 묵묵히 감내하고, 규훈석 앞에 꿇어앉아 그곳에 적힌 것을 바라보며 남망기는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을 기다렸다.
처벌을 기다리며 남망기는 규훈석에 새겨진 글자 하나하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남망기가 배우고 익히는 모든 것의 기초이자 지금의 남망기를 만든 글자들이었다. 정확하게 새겨진 글자는 어디 하나 모난 구석이 없었고, 새겨진 글자에 담긴 의미는 무엇 하나 허투루 사용된 것이 없었다. 몇천 번을 읽었다 하여도 과장이 아니었고, 몇백 번을 적었다 할지라도 과장이 아니었다. 남망기의 한평생은 그것들을 익히는 것에 쓰였다 할지라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남망기는 다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익히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남망기는 자신의 행동이 아닌 규훈 자체를 판단하기 위해 다시금 그 속에 담긴 글자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렸다.
그런 남망기를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은 남희신이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남망기는 그 자리에서 고개만을 숙였다. 벌이 끝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는 까닭이었다. 남희신은 그런 남망기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저 안타깝게 남망기를 바라볼 뿐이었다. 남희신이 그토록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동생이었다. 자신의 신념을 관철함에 있어 망설임이 없는,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아이였다. 그런 남망기가 선배들에게 칼을 댄 이유를 어찌 모르겠는가. 눈이 없고 귀가 없어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모를 수 없었을 것이다. 남망기는 오로지 위무선만을 위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희신이 물었다. 위 공자는 이미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는데, 네가 무엇이 아쉬워 그 일에 동참하느냐고. 그러자 남망기가 대답했다. 그가 한 모든 행동이 맞는지 틀리는지 단언할 수 없지만, 맞든 틀리든 자신은 그와 함께 모든 결과를 받아들이겠노라고. 남희신은 탄식했다. 옛적부터 고집이 강해 한번 꿇어앉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며 남희신은 그저 탄식하였다. 단단히 잠긴 철문 앞에서 그것이 열리기를 묵묵히 기다리던 아이가 이제는 단단한 바위 앞에 앉아 마치 그것이 깨지기를 기다리듯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남망기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였으나 남망기를 지켜주던 것이기도 하였다. 규율이라는 지표가 올바른 길을 제시하였고, 규율이라는 글자가 틀리지 않는 답을 제시해왔다. 그 위에서 살아오고 그 뒤에서 살아온 아이가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 바깥으로 나가겠노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한들 자신은 끝까지 원하는 것을 쫓겠노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희신은 남망기를 응원할 수도 말릴 수도 없었다. 그것이 옳은지 옳지 못한지는 남희신조차 알지 못했다. 그것을 온전히 지지할 수 있겠느냐 묻는다면 남희신은 답하지 못했다. 그것이 틀렸느냐 묻는다면 남희신은 그 또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남희신은 남망기를 말릴 수 없었다. 다만 남망기의 고집을 듣고, 의지를 보고, 선택을 바라보며, 그 대가를 치르겠다는 아이를 등진 채 하릴없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굳어진 마음을 어찌 깨트리겠는가. 그것이 저 아이의 결심이고 삶이었다. 타인의 삶에 간섭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었다. 설령 그것이 가족이라 해도 말이다. 남희신은 그저 남망기를 아끼는 남계인의 마음이 그 아이를 보호해주기만을 바랐다.
무수한 글자를 세긴 남망기가 다음으로 마주하게 된 것은 자신이 상처입힌 33명의 선배들이었다. 안타깝게도 남희신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망기를 아끼는 남계인의 마음은 삐뚤어졌다 여겨지는 그 아이를 다소 과격하게나마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상처받아도 상관없었다. 고통스럽다면 당연히 그러해야 했다. 남망기에 대한 남계인의 사랑은 스스로의 죄를 묻고 이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며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못하도록 가르침을 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남계인의 형벌은 잊어서는 안 되는 잘못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것이 되고야 말았다.
서른세 대의 계편형. 서른세 명의 선배를 상처입힌 벌이었다.
남망기는 불만 한 마디 없었다.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다만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예견하듯, 무릎 위로 올려둔 손에 아주 조금 힘이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 후는 잔혹했다. 내려치는 채찍에 자비란 없었다. 그를 가르치고 바른길로 그를 이끌고자 했던 이들을 상처입힌 죄는 너무나도 컸다. 그것이 피부를 찢고 살점을 도려내며 피를 흩뿌려도 남망기는 그것에 저항하지 않았다. 선배 한 사람에 채찍 한 줄. 채찍 한 줄에 가르침 하나. 다리를 다쳐 주저앉아있는 선배에게, 다친 팔을 구부리고 있는 선배에게, 의자에 앉아있는 선배에게, 무언가를 들고 있던 선배에게,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계시던 선배에게.
남망기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서른세 명의 선배들에게.
신을 거스른 죄가 이런 것일까. 정신을 잃어가는 남망기를 바라보는 그들은 마치 서른세 명의 부처와도 같아 보였다. 언제나 곁에 있다 한들 정작 그 실체는 조각상에 불과한 부처. 적어도 그때의 남망기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마지막 채찍이 난도질 된 등을 짓이기고, 벌이 끝났음이 선포되었을 때, 남망기의 몸은 저항 없이 허물어졌다. 잘 관리하여 아름다웠던 긴 머리카락은 피범벅이 된 채 살점과 뒤섞였고, 새하얀 옷은 피에 젖어 피부에 달라붙었으며, 근육으로 이루어진 몸은 숨을 내쉴 때마다 자신이 망가졌음을 표현하듯 아득한 고통을 선사하였다. 그것은 더 이상 단련된 수사의 균형 잡힌 몸이 아니었다. 조각나고 뭉개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이물질이 뒤섞인 고깃덩이에 불과하였다.
아수라장이었다. 피가 흥건하여 피가 모자라 죽어버릴까 하였고, 감히 닦아낼 수도 없는 상처가 곪을까 두려워했으며, 잘못 씻어냈다간 영영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될까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였다. 수백 장의 천이 오갔고 수십 가지의 약재가 오갔다. 단단히 잠긴 문 안쪽에서는 몇 날 며칠 피비린내와 고름 냄새가 풍겨 풀벌레조차 견디지 못해 달아날 지경이었다. 몇 바가지의 피고름이 버려지고, 못쓰게 된 천이 둔덕을 이루고서야, 사람들은 고비를 넘겼다며 한숨을 놓았다.
남망기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단정한 몸을 감추었던 새하얀 옷은 실오라기 하나 보이지 않았고, 넓은 등을 덮었던 검은 머리카락은 마구잡이로 잘려있었다. 바르게 곧게 펴졌던 허리는 윤곽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늘 깨끗했던 얼굴은 땀과 머리카락이 엉켜 붙어 엉망진창이었다. 등이 뭉개졌으니 앉기는커녕 숨을 내쉬는 것조차 힘겨웠다. 숨을 몰아쉬어 흉부가 부풀어 오르는 그 당연한 동작조차 축복이었던 듯, 남망기는 신음할 기력조차 없이 몇 번이고 정신을 잃어가며 고통에 몸을 맡긴 채 그저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야 했다. 이 일은 철저히 함구 되었기에 헛말이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다만 사정을 아는 이들만이 남망기를 딱하게 여기며 한 번의 실수가 훌륭한 수사를 난도질해놓았노라 남몰래 혀를 찼다.
세상이 그리 말한다 할지언정 남망기는 후회하지 않았다. 고통 속에서 정신을 잃어도,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 버거운 시간을 보냈어도, 힘겹게 몸을 일으키다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쓰러져야 했을 때도 남망기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것은 남망기가 바란 일의 대가였고 남망기가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의 대가였다. 남망기는 위무선과의 ‘다음’을 기약했다. 그 다음을 얻어내기 위한 대가가 이런 것이라면 남망기는 몇 번이고 대가를 받아낼 준비가 되어있었다. 남망기가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몸이 그 대가를 견디지 못한 채 죽어버리는 것뿐이었다.
남망기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귀한 사람으로 자랐다. 자신을 갈고닦아 내면을 가꾸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를 만드는 것이고, 몸을 정갈히 하며 외면을 다듬는 것은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라 배웠다. 그런 남망기가 단정하기는커녕 보통의 사람과 같은 깨끗함마저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남망기를 알고 있는 누구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남망기는 버텼다. 기꺼이 그것들을 버텨냈다.
난도질당한 몸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피가 멎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다행히도 그 시간동안 남망기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남계인이 마지막으로 남망기에게 명한 ‘면벽 수련’이라는 처벌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홀로 수련을 하기 위한 함광군의 ‘면벽 수련’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누구도 함광군의 부재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저 언제나처럼 자신을 갈고닦는다 믿고 있을 뿐이었다. 남망기의 사정을 알고 있는 의원들과 남희신만이 조용히 남망기의 방을 드나들며 약초를 갈고 붕대를 갈아주었다. 그렇게 몸을 회복하기에도 벅찬 시기에, 남망기는 어떤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업보는 돌고 돌며 선악은 인과응보가 있듯이, 이릉노조가 결국 죽어 혼백도 사라졌다고.
남망기는 오랜 시간 자신을 품어주었던 방을 뛰쳐나왔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자신을 지켜준 쉼터와도 같은 방이었으나, 그 순간 그곳은 남망기를 가두었던 감옥이 되고 동굴이 되고야 말았다. 남망기는 그렇게 그곳을 뛰쳐나왔다. 상처를 치료하느라 제대로 다듬지 못한 머리는 쥐가 달라붙어 갉아먹은 듯했고, 고통에 몸부림치느라 땀에 젖었던 몸에는 지독한 약초 냄새가 배있었다.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걸음걸이도 어색한 몸을 이끌고 달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광인(狂人)이었다. 그런 광인을 보고 누가 함광군을 떠올릴 수 있었겠는가. 선문의 명사이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고아하고 아름다운 함광군을 그 누가 저런 광인에 비할 수 있었겠는가.
남망기가 어떻게 난장강에 도착할 수 있는지는 남망기조차 설명할 수 없었다. 몸이 허락하면 검에 올랐고 버티지 못하면 다리로 달렸다. 상처가 터지고 땀에 젖어도 남망기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갈가리 찢기고 산산이 부서져도 달리던 그 몸은 갈 곳을 잃어버린 무수한 말이 잿더미가 되어 흩날리는 모습을 보고서야 아래로 아래로 무너져내렸다.
남망기는 굳어가는 몸을 이끌고 잿더미 속을 걸었다. 아무것도 없는 그 장소를 하염없이 걸어갔다. 그러나 그곳에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 한평생 위무선의 곁을 지켰을 검조차, 위무선의 마지막까지 곁에 있었을 피리조차 없었다. 그 자리에서 무수히 약속되었던 ‘다음’도, 누군가에게 고했을 작별도, 간절했을 기원도. 그의 곁에 있던 것은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의 존재 자체가 거짓이었던 것처럼.
잿더미 속을 걷는 남망기의 모습은 마치 그곳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망자(亡者)와 같았다. 분명 존재하나 없는 것과 같았다. 자그마한 희망조차 무너져버린 그 모습은 금방이라도 무너지고 재가 되어 흩어질 것만 같았다. 마치 그곳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맹세와 목소리처럼. 남망기는 그렇게 한참을 정처 없이 떠돌았다. 산과 들을 떠돌며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그 주변만을 맴돌았다. 몇 번의 밤과 몇 번의 낮이 지나갔다. 몇 번째 달을 보내고 몇 번째 태양을 맞이한 건지 기억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남망기가 그곳에서 어떠한 희망도 가지지 못함을 인정하기 시작했을 때, 이제 더 이상 그곳에 그가 찾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남망기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던 것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죽은 것이 품고 있는 마지막 생명이었다. 반절은 타버린 나무가 품고 있던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이자 마지막 소망이었다. 열이 올라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미약한 아이는 어쩜 그리도 나약해 보이던지. 다만 그것이 살아있음은 어쩜 그리도 생생히 와닿던지. 부끄럽게도 남망기는 그 자그마한 아이로부터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남망기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다치고 병들어 죽어가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 아이가 떠올리게 만든, 갈 곳 잃은 말의 주인이었다. 처음으로 그의 이마를 조심스레 쓸어보았을 때, 처음으로 그 등을 보며 다음을 기약했을 때, 그는 꼭 이렇게 열에 취해있었다. 꼭 이렇게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꼭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던 ‘다음’이 있었다. 끝내 붙잡지 못했던, 몇 번이고 다시 기약해야만 했던, 결국 끝내 전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다음’이었다.
그렇게 남망기는 그 아이를 품었다. 그곳에서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다음’이었다.
‘다음’을 품고 돌아오던 남망기는 난생처음으로 술을 쥐었다. 처음으로 마시는 술은 너무나 뜨거워 목구멍이 전부 타버리는 것 같았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빈말로라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 왜 그 사람이 이것을 사랑했는지 남망기는 알 수 있었다. 처절하게도 그것을 깨닫고야 말았다.
술에 취한 남망기는 자신의 곁에 있는 검을 보았다. 자신의 곁에는 검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것이었다. 검을 지닌 누군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생의 마지막 몇 년간 누군가의 옆자리에 있던 것은 검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 있던 것은 피리였다.
열이 끓어오르는 몸을 이끌고 남망기는 피리를 찾기 시작했다. 잿더미 속에서도 찾아내지 못한 피리를 찾기 위해 남망기는 한평생을 살아온 집안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언제나 단정하고 예의 바르던 함광군이 단정치 못한 옷차림에 쥐가 파먹은 것 같은 머리카락으로 고실의 문을 부숴가며 야밤에 소란을 피워대니 누가 놀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남희신이 그를 붙잡아도 남망기는 피리만을 찾았다. 아무리 좋은 피리를 쥐여줘도 남망기는 단 하나만을 찾아 헤맸다. 남희신은 남망기를 붙잡지 못했다. 남망기 본인조차 자신을 붙잡지 못했다.
심장이 뛰었다. 몸이 뜨거웠다. 술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가슴이 아팠다. 가슴이 아파 남망기는 자신의 가슴을 그러쥐었다. 가슴이 뜨겁기에 바라보았더니 보이는 것은 선명한 낙인이었다. 그의 마지막 삶 동안, 단 한 순간도 그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남망기가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위무선의 흔적이었다. 남망기가 그토록 갈망하던 위무선의 곁에 있던 것이었다. 남망기는 그것을 소중히 쓰다듬었다. 그리고 돌아갔다. 원하던 것을 쥐고 나서야 남망기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끔찍이도 사랑스러운 흔적이었다.
그날 이후 남망기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하였다. 남망기는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을 헤치고 다시금 남계인을 마주하였다. 남계인은 아이를 받아들이는 일에 반대하지 않았다. 남망기가 충분히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소란에 대해서도 말을 얹지 않았다. 남망기는 그런 남계인에게 예를 표하고 스스로 죄를 청하며 하루를 꿇어앉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흘러 머리카락은 자랐고 흰옷에는 피가 묻어나지 않았다. 남망기가 면벽 수련을 끝내고 다시 세상으로 나오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운심부지처는 여전히 고요하였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지속해갔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자그마한 아이 하나가 운심부지처에 터전을 잡고 그곳의 아이로서 살아가기 시작했다는 것뿐이었다.
이제 남망기의 곁에는 그날의 남망기가 품었던 ‘다음’이 있었다. 면벽 수련으로 제대로 돌아봐 주지도 못한, 낙인만큼이나 선명하게 남망기의 곁을 지키고 있던 다음이었다. 아이의 곁에 설 수 있게 된 남망기는 아이를 보살피며 수련을 돕기 시작하였다. 아이는 기쁘게 남망기의 뒤를 따라왔다. 어떤 날에는 검을, 어떤 날에는 역사를, 그다음 날에는 고금을. 도와주어야 할 것이 많았다. 책임져야 할 것도 있었다. 남망기가 아이를 살펴볼 때면 처음 그 아이를 데려오게 만들었던 사람의 흔적 위로 덧씌워진 다른 사람들의 흔적이 보였다. 그것은 명백히 이 집안의 것이었고, 나아가 그것은 남망기의 흔적이 될 터였다. 마냥 햇살처럼 남망기의 곁을 지키는 아이를 보며 남망기는 다음날의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찬찬히 되새기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남망기는 끝내 전하지 못한 ‘다음’을 품었다. 그렇게 살아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