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ol_mdzs


산하엽(山荷葉)
사랑을 되새기는 일에 조금의 망설임도 존재하지 않았다. 잘못된 인생의 산증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마음을 달래가며 기억을 더듬었다. 혼백이 이곳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 하나만은 반드시 기억해야만 했다.
간사하게도 좋은 기억만 곱씹으려 했으나, 인생은 호접지몽(胡蝶之夢), 혹은 뿌리 없는 평초(萍草)와도 같다는 말에 격하게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명분을 내세워가며 전생의 모든 일에 이치를 따지고 들었다.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온 인생이라고 하지만, 정말로 못나고 싶어서 못난 사람 어디에 있을까. 다 끝난 마당에 시비와 호오를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군가에게 인생 헛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웃어넘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릉노조처럼 살면 안 된다, 그 말은 제아무리 낯짝 두꺼운 위무선이라 할지라도 타격을 입을 만한 실로 충격적이고 모욕적인 언사였다. 아무튼, 사후(死後)의 심판은 과장하자면 두려움의 근원에 가까웠다.
어렸을 때부터 오냐오냐하며 자라던 아이들과는 달리, 세상에 제 편 하나 없이 외로이 컸으니 자기객관화가 특기인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다. 세상의 법칙을 누구보다 빨리 깨달은 아이는 뭇사람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나 자신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한 치의 비약도 없었고, 언제나 냉정함을 잃지 않는 어른으로 컸다. 그래서인지 내가 인생을 엉망으로 살았나, 하는 막연한 고민은 정말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 나갔다. 한 사람의 인생을 고작 몇 문장으로 함축한다는 것은 사도의 길을 걸었던 위무선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누구던가, 인생 참 험하게 살아온 이릉노조 위무선이 아니던가. 두 번의 생애는 정말이지 두말할 것 없이 험난했다. 이릉노조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한눈에 판단하고 한 문장으로 정의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귀신보다 무섭고, 신보다 대단한 존재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기에 온 지 한 시진이 지났는지, 열두 시진이 지났는지, 달포가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의 흐름에서 완전히 도태된 뒤로 눈을 뜨면 매번 같은 일상이 이어졌다. 얼마 전만 해도 기억의 잔해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수록 극심한 통각을 느꼈는데, 이제는 다 한낮의 꿈처럼 느껴질 만큼 몸도 마음도 편안했다.
언제나 고통 속에서 내달렸던 인생이라 그런지 기다린다는 건 위무선에게 있어 조금은 따분하고 무료한 일이었다. 그간의 일이 모두 꿈이었다고 치부하기에는 아직 가슴에 녹아 있는 지난날의 포근함과 따스함이 생생했다.
눈을 뜬 이래로 내내 비가 내렸다. 먹구름이 낀 잿빛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빗물과 빗소리는 선연했다. 그런데 몸뚱이는 그걸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제 현신(現身)이 사명을 다해 절명했기 때문이었다. 신은 생(生)의 질서를 모조리 잃어버린 자에게 가혹했고, 세상의 것을 누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투명한 몸은 비에 젖어도 여전히 투명했다. 변화해 간다는 건 오직 생자(生者)에게만 주어진 자격이었으니까. 이제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연기가 되어가는 몸의 부분처럼, 기억도 희미해져 갔다. 그럴수록 아픔이나 미련, 후회 따위도 전부 홀가분한 바람을 따라 흩어졌다. 육신에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가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갈수록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지만,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동시에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했고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쓸쓸함 또한 홀로 감내해야만 했다.
기다림이라는 건 위무선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부끄럽지만 누군가를 기다리게 만든 적은 있어도 이토록 오랫동안 끊임없이 바라고 기다린 적은 전생에는 경험한 적 없었다. 세상 그 어디에도 당연한 건 없다. 그걸 알면서도 지금의 기다림이 당연하다 믿었다. 그래야 너를 만나 비로소 선택이 옳았느니라, 내 사랑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 테니까.
잎의 가장자리의 물기가 어김없이 떨어질 때마다 꼭 꽃잎이 피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곳에 머물렀다 간 사람들의 흔적을 담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저마다 사연의 눈물을 쏟아부어 꽃잎은 맹렬한 색을 띠는 것일지도.
석산의 동산에서 가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살아 숨 쉬는 것에 닿을 수 있는 건 산 자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은 끝이 났고 이야기는 결말이 났으니, 모든 삶은 영역 밖의 일이 되었다. 외로운 영혼에게 남은 건 막을 내린 이야기를 잘 정리하는 것뿐이었다. 희로애락도, 궁금증도 절망도 허기도,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머나먼 일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그런 건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사치였다. 그래도 조금은 궁금했다. 또다시 저 없는 삶을 이어갈 네가.
그렇게 적적한 시간을 보내며 하염없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이 비가 멎으면 뭐든 훌훌 털어내고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한계를 헤아리기 어려운 미련의 끝에는, 기다리던 누군가가 찾아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대보다는 오히려 확신에 가까웠다.
그칠 줄 모르던 비가 차츰 잦아들기 시작하며 의식은 점차 또렷해졌다. 긴장감이 섞인 숨소리는 불규칙했다. 빗소리가 느릿한 박자를 탈수록 다가오는 발걸음은 점차 빨라졌다. 한 뼘 거리까지 다가온 이는 제가 그리도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자에 대한 소문을 익히 현세에서 들은 적이 있었기에, 위무선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기억 속의 그 사람처럼 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갯짓을 했고, 위무선은 말없이 옷을 털고 일어났다. 저 얼굴이 마지막 가는 길의 위안은 되겠다 싶어 냉큼 그를 따라나섰다. 그렇지만 따라 걷는 발걸음만큼은 무겁기만 했다. 감촉을 느낄 수 없는데도, 빗물에 젖어 드는 것만 같았다. 지나온 자리에는 발자국 또한 남지 않고, 제 생에 무엇도 남기지 않고 가는데 그게 어쩐지 못 할 짓인 것 같아, 눈앞이 캄캄했다.
마음에 품은 사람과 똑 닮은 얼굴을 한 자는 저를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이 마음 어디에 두어야 하는 걸까. 물음에 정답이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남망기와 닮은 저 사자에게 묻고 싶었다. 그러나 눈앞의 그는 남망기가 아니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남겨진 이 보고 왔으니, 그것만이 위안이었다. 죽음은 태초로 돌아가는 일종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랬다. 자연스럽게 흐름에 몸을 맡기고 초연해지면 될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방랑하는 마음을 붙잡아 인도해줄 유일한 사람이 그밖에 없다는 것을, 위무선은 다시 한번 느꼈다.
허나, 가슴 속에 사무치는 일말의 감정은 무엇일까. 단편적이었지만 흐릿하게나마 떠오르는 건, 오직 사랑했던 기억뿐이었다. 위무선은 최선을 다해 사랑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분명 후회할 것 없는 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신념대로 밀고 나가야만 했다.
위무선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용기로 사자의 팔을 붙잡았다. 닿을 수 있을까, 끝을 맺지 못했던 물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매듭을 지었다. 얼굴에 손가락이 닿기도 전에, 그가 먼저 손을 내밀어 위무선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차갑다거나 따스하다거나 그런 건 일찌감치 잊어버렸다. 그저 소리 없이 웃었다. 더는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어느덧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이 눈앞에 나타났다. 바닥이 보이지 않아 깊이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고, 물가에 선 의령수(衣領樹)는 한껏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위무선은 마른침을 넘기며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이미 세간에는 사자가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어. 네가 하고 있는 그 얼굴, 전생의 내가 정말 많이 사랑했나 봐. 보면 볼수록 기분이 이상하네, 그 사람 생각이 나서.”
흔들리는 검은 물결에 반야용선이 삐거덕거리는 괴음이 귓가에 닿았다. 기기괴괴함 속에서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던 위무선이 덩달아 떨기 시작했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았는데, 이젠 조금 무서워.”
이 강을 건너면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온몸을 덮쳤다. 잊으면 편해질 수 있을 텐데, 한 번도 그 쉬운 길을 걷고자 하지 않았다. 바라질 않았으니까.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 더는 무엇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
하지만 시간은 조금도 남지 않았고, 생을 끝냈으니 가야만 했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가슴이 따라주질 않았다.
“그러니 이젠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어.”
사랑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조차 가지지 못한 이가 어리석게도 애욕을 버리지 못했으니,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을 건너다 모든 기억을 잃게 되어도, 이대로 모든 걸 잊고 나락으로 떨어져도 상관없다. 감히 바라던 바였다. 이 끝나지 않는 고통, 끝낼 수만 있다면 이대로 소멸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그리 생각하며 모든 걸 잊고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 남겨 두고 온 이가 있어.”
떨리는 입술이 이름을 부르길 주저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지 못해,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심판을 받는 죄인처럼 머리를 숙이며, 지난날 더 많은 사랑을 주지 않았던 과오를 후회했다.
“아직은 갈 수 없어……. 그에게 해 주지 못한 것이 많아. 또다시 혼자 두고 떠날 수 없어, 도저히.”
신은 정말로 매정했다.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니, 그토록 바라고 미련을 두었던 사람을 마지막 순간에 제 곁으로 보내시니. 그는 어째서 이따위 생에 집착하느냐는 염세적인 눈빛으로 위무선을 봤다. 그건, 저도 몰랐다. 굳이 이유 따위가 필요할까, 아무래도 좋잖아.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기 힘들어져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차분히 대답하려 해도, 심금을 휘젓는 일에는 무력하기만 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이었으니까, 위무선은 평범한 인간이었으니까.
“그저 사랑했어, 다시 사랑하고 싶어.”
그것이 마지막 끝맺음이었다. 더는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강한 악력과 함께 시야가 환해졌고, 헛숨을 내쉬려던 입술이 무언가로 막혔다. 억지로 비집고 들어오는 옅은 단향목 향기는 다소 무자비하게 파고드는 입술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상황 파악을 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위무선은 되살아난 감각이 생경해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그러면서도 입맞춤에 열중하며 적극적으로 응대했다. 아무 저항 없이 접문을 받아들였다. 전부 한평생 제 것이나 다름없던 감각이었으니.
무릇 세간에서는 사자와의 접문이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거나 혹은 기억을 잃게 한다는 풍문이 돌았다. 아무튼, 근거 없는 소문만 무성했는데 지금의 위무선은 그런 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천천히 감기던 눈이 급작스레 떠지는가 하더니, 깨달음을 얻은 몸이 이내 심하게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반동은 고스란히 힘을 준 쪽에 전해져,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데도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아니, 그럴 리가……. 너, 남잠이야?”
“위영.”
이마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들리는 낮은 울림에 한참 전에 멎은 심장이 다시 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럴 리는 없었다. 가슴에 손바닥을 얹었지만 역시나 심장은 뛰지 않았다. 단지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도, 그것은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파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급히 고개를 들자 후두둑 뜨거운 후회가 눈가에서 떨어져 내렸다. 손에 손을 포갰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닿을 수 없었는데, 너에게만은 닿았다. 허망하게 맞잡은 손을 바라봤다. 무표정했던 얼굴이 그제야 웃었다. 그 순간 위무선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정말로 너를 사랑했구나. 떨리는 손끝으로 그의 뺨을 잡았다.
“나 여기 있어.”
꿈결 같지만 꿈결 아닌 대답이 들려왔다. 나 여기 있노라, 바람처럼 다가와 혹여 믿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눈앞의 너는 네가 아니어야만 했다. 네가 아니길 그토록 바랐는데.
“너, 너 대체 무엇 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설 수조차 없으면서도, 무릎을 세우고 무작정 일어나려 했다. 덕분에 흙먼지가 일어났지만 제 알 바 아니었다. 손을 뻗어 여전히 한 떨기 목련 같은 사내를 더듬거렸다. 구태여 변명하지 않는 입술이 도리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내가 울면 너는 울고, 내가 웃으면 너는 웃을 테니까. 위무선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미소 지었다. 두어 번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어서 소리 없는 무거운 숨을 뱉었다.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삼켜내야만 했던 그림자가 조금 드러났다. 숨기려던 것이 무색하게도, 여유롭던 얼굴은 금세 일그러졌다. 모든 변화를 지켜보던 남망기는 고개 숙여 위무선을 살피더니 표정이 숨겨지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제 도려의 눈가를 부드러이 쓸어내렸다.
더 이상의 용기는 불필요했다. 갈 곳을 잃었던 영혼은 방향을 잡고 팔을 벌렸다. 이리 와, 내 남잠. 흐르는 시간도 아까워 제가 먼저 일어나 품에 안겼다. 급한 성질은 여전했다. 도망이라도 갈까, 황급히 붙들어 잡았다. 그 어느 날의 남망기처럼.
“왜 왔어, 더 오래 있다 오지 왜 온 거야.”
위무선은 떨리는 손을 들어 남망기의 뺨을 만졌다. 유일한 촉감을 찾아 헤매는 손길이 애절했다. 목덜미에 눌러 담은 숨을 뱉으며 잠겨버린 목소리로 마음을 전했다. 내게 남은 게 죄다 분에 넘치는 사랑뿐이라서, 받기만 한 사랑뿐이라서.
“그리고 너를 사랑해서 미안해.”
“……나는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조했어.”
눈을 감는 순간에도 저렇게 웃던 사람이었다. 행여나 가는 길 발걸음 무거울까 걱정하는 나의 사랑, 너는 언제나 나를 참회하게 만든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게 만들어도 너를 원하기 때문에, 다음의 생 역시 속죄하며 사는 방법밖엔 없다고 생각했다. 만일……, 있다면.
“정말로, 우리에게 다음이 있다면……”
어쩌면 우리의 다음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정말 만에 하나 먼 훗날에 너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먼저 찾아갈게. 헛된 약속일지라도 그리 말한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할게, 남잠.”
투명한 몸은 볕을 받지 않았음에도 찬란하게 빛났다. 기적은 없을 것이다. 너를 만난 것은, 내게 기적 같은 일이었으니까. 우리는 빛줄기로 흩어지며 비로소 찬연한 소멸을 맞이했다. 짧았지만 참으로 모자람 없는, 사랑하기 마땅한 삶이었다.